존재를 증명하는 가치박동이 없다면, 그것은 자연사일까, 사고사일까,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자신의 ‘자기다움’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이해 못하는 사람은 =생존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의문사(疑問死)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뛰지 않은 심장의 ‘심폐 소생술’처럼 외부의 압력과 힘으로 존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존재 질문술’로서 ‘나의 자기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사(疑問詞)다.
사람의 죽음은 크게 자연사, 사고사, 자살과 타살로 구분된다.
이 네 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사망 중에는 의문사(疑問死)가 있다. 말 그대로 사망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죽음이다. 의학적 사망이라고 불리는 COMA는 고대 그리스어로 ‘깊은 잠’이라는 뜻으로 뇌사를 말한다. 그리고 안락사(安樂死)와 존엄사(尊嚴死)는 본인 및 직계 가족에 의해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목숨을 위해 치료를 중지하고 인공적인 죽음 혹은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만약에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선택할까?
자살이 한국인의 사망 원인 5위 안에 있다. 우리나라의 3대 사망 원인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이지만, 이것은 전 연령 통계치다. 20대의 사망 원인은 자살과 교통사고가 1, 2위를 차지한다.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과연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가?’ 과연 온전한 자연사를 맞이할 수 있을까?
사망의 기준은 ‘심장의 박동’이다.
평균 수명이 70세라고 한다면 심장은 27억 번 뛴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심장이 평균 200번만 뛰지 않아도 인간은 그대로 죽는다. 인간의 생사를 심장박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죽어 가고 있는 인간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사람의 기억이 꿈보다 클 때 그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죽어 가는 사람을 수시로 만난다. 자신의 옛날 꿈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후회하는 사람, 남의 꿈을 자신의 꿈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허무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중에서도 영적 코마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살아야 할 가치와 이유 그리고 생존 본능이 없는 사람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생존을 증명하는 심장박동은 있지만, 존재를 증명하는 가치박동이 없다면, 그것은 자연사일까, 사고사일까,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극단적 정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자기다움’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죽음은 생존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의문사(疑問死)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뛰지 않은 심장의 ‘심폐 소생술’처럼 외부의 압력과 힘으로 존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존재 질문술’로서 ‘나의 자기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사(疑問詞)다.
세상은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다. 단추를 누르거나 혹은 명령만 해도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이렇게 스마트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스마트해졌을까? 주변이 스마트해지면 우리는 정반대로 무능해진다. 스마트폰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스마트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마우스 클릭만으로 완성되는 인터넷 도구들을 활용하는 것을 스마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은 돌고래의 지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좋아요’라는 칭찬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그것은 생명 유지 장치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도록 길들여진 상태와 다름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자기다움은 지나친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그렇다고 염세적인 비판도 아니다.
자기다움은 이기주의가 아니다. 자기다움은 자기중심적 해석도 아니다.
자기다움은 자신의 성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다움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기다움은 누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더 나아가 자기다움은 자신이 속한 관계에서 ‘우리다움’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나는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은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이다.
자신을 알아 가는 것,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전체를 조화롭게 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자기다움’이다.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아 가고 배워 가는 것이 진정한 자기다움이다.
‘자기다움’을 통하여 자신이 왜 여기에 머물다가 떠나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자 목적이 아닐까?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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