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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과 만나다.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 침묵을 견딜 수 있는 것

자기다움

by Content director 2022. 9. 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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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워지는 것은 어떤 질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질문은 대답보다 더 가치가 있다. 자기다움은 회의 시간에 갑자기 끊어진 대화처럼 일상에서 나를 침묵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회피가 아니라 나를 더 성장시키는 충전의 시간이다.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 

 

나는 새벽에 스스로 질문을 하고 저녁에 답했으며 주말에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새벽마다 나에게 한 질문은 스스로 존재감을 인식할 수 있는 ‘자기다움’이란 무엇인가였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책상에 앉아서 그렇게 살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 변명하거나 해명을 했다.

 

그렇게 살았던 내용을 주말에 정리하면서 다음주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선언문을 다시 작성했다. 그런 선언문은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고치고 또 정리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나에 대해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정말 형편없는 나’와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다. 이 둘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인가는 내 몫이다. 

만약 소설이라는 형태로 여러 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면 자기 안에 참으로 많은 캐릭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캐릭터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자기다운 캐릭터를 찾는 데서부터 자기다움이 시작된다.

 

 


 

얼핏 보면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이 과정이 거북하게 과장되고 거창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처럼 보여서 쑥스럽고 부끄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이 훈련의 의도가 자신을 위인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 누가 나에게 ‘새벽마다 일찍 출근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할까.

누가 나에게 ‘브랜드를 통하여 새로운 생태계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인사이트는 어디서 나왔나요?’라고 질문하겠는가.

 

질문의 수준이 바로 당신의 수준이다. 

 

 

질문의 수준을 더 높여 보자.

창조주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무엇을 묻고 싶어 할까?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창조주가 물어보아도 대답할 수 있다면 ‘자기다움’을 갖춘 것일까?

예리한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 자신이 공감할 만한 대답이 중요하다.

자기다워지는 것은 어떤 질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질문은 대답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최고의 답변이 아니라 최고의 질문을 찾기 위해 새벽마다 생각한다.

 


침묵을 
견딜 수 있는 것

 

열띤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대화가 중단될 때가 있다. 

굳이 할 말이 없을 때 가장 힘든 것은 계속 침묵을 유지할 때다. 

어느 누구도 어색한 1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최근에 휴대폰을 끄고 하루를 보낸 적이 있는가? 

언제부터 그런 상황이 불가능해졌을까? 

최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문자, 고스톱 그리고 게임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이 정지된 상황을 참을 수 없어 한다.

 


 

세상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진짜 친구보다 인터넷 친구들이 많고 댓글이 많으면 진정한 우정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경기는 어려워지고 일자리는 줄어들어서 청년들의 목표는 오직 취업이 되었다. 문제는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1/8,145,060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1등이 나오는 것처럼, 이런 와중에도 환경에 잘 적응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침묵(Silence)은 고독(Solitude)과는 별개의 영역으로서 고독이 감정의 몰입이라면 침묵은 이성의 명상이다. 

만약 고독이 인간적이라면 침묵은 신(神)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고독이 외부와의 단절이라면 침묵은 내부에서의 독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의적 행동인 침묵은 내면의 심연으로 잠수해 들어가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침묵 속에서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게 된다면 현대인이 결코 가기 어려운 ‘절대 침묵’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침묵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절대’의 영역이다.

 

생명, 죽음, 신앙, 자아, 존재, 허무 등 침묵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범위들은 일상의 시간에서는 전혀 감지할 수 없는 고주파 대역이다. 외부와 단절하고 내면의 세계로 가기 위한, 시계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새벽이야말로 침묵을 위한 가장 적합한 시간이다. 

그래서 새벽마다 내면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껴지면 계속 의지할 대상을 찾거나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더욱 큰 괴로움의 파도에 휩쓸려 들어간다. 갑자기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혼자 남아 있다는 불길한 감정에 함몰되는 것이다.

 

토머스 무어는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고 말했다. 

가장 깊은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 우리는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안에 가치와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침묵을 가지게 되면 좌절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침묵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슬픔, 현재에 대한 불만, 자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침묵은 갑자기 절대 고독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런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가치 기준’이 필요한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빠지지 않게 하는 하나의 정지선 역할을 해준다.

 


 

나는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난다. 일상에서는 전혀 침묵할 수 없는 직업을 가졌기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텅 빈 사무실에 먼저 나와서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조용한 시간을 가진다. 

처음에는 5분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점점 침묵으로 잠수하는 시간을 늘려 갔다. 

내면의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나는 비로소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영혼’이었다.

 

새벽 3시마다 일어나는 새벽 거인인 마더 테레사는 침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분은 시끄럽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만날 수 없다. 자연, 곧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이 고요함 속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 보라. 해와 달과 별들이 고요 속에서 어떻게 운행하는지 보라.”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우리 영혼을 울리려면 침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탈무드에 적혀 있는 ‘침묵’이 나의 깊은 곳을 울렸다.

 

“항상 침묵 속에 있는 사람은 신에 가까이 가기가 쉽다. 그러니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쓸데없이 입을 놀리고, 곧바로 고독과 초조함을 느낀다. 후회할 일을 삼가려고 결심하면 진실에 다가선다. 말할 것은 하되, 불필요한 말은 삼가자.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자. 반성과 함께 전진하자.”

 

이처럼 침묵은 과학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영의 영역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리고 그 영역의 깊음과 넓음을 보여 준다.

 


 

새벽 침묵 앞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침묵을 학습하거나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도저히 풀지 못할 문제와 대면한 듯한 답답함과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 지루한 시간이 주는 중압감들이다. 이 낯선 경험을 견디지 못해서 이내 새벽 침묵을 포기해 버릴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훗날 다시 이런 비슷한 내면의 질문과 욕구에 직면했을 때 이때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다시는 진지한 침묵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새벽 침묵은 거인들의 시간이다. 모든 거인은 침묵을 통해 성장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침묵을 이기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다음은 침묵과 함께하는 명상으로, 마침내 침묵을 즐기는 창조의 힘을 배워 가게 될 것이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를 또다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기적의 시간이 바로 새벽 침묵의 시간이다.

 


 

카를 힐티는 그의 저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에서 “진정한 창조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대해 100% 동감하는 이유는 나 또한 새벽 창조의 희열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 침묵 안에 있는 창조력을 ‘집중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주변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귀는 이런 소음에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다. 물론 새벽에도 일어나서 1분만 기다리면 곧 소음을 들을 수 있다. 자동차 소리, 시계 소리, 간혹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서울에 살고 있다면 좀처럼 절대 침묵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호주의 시골에서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있다. 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대 침묵, 그것은 우주의 고요함이었다. 장엄한 은하수를 수놓은 검푸른 하늘도 고요했다. 

 

그때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바로 살아 있다는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가장 가까운 단어가 있다면 아마 ‘회복’일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을 주었고, 고요함을 통해서 안식하였고 그 안식 속에서 나는 회복되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다시 들어간 것처럼 새벽 침묵은 나에게 그런 평안을 주었다.

 

자기다움은 회의 시간에 갑자기 끊어진 대화처럼 일상에서 나를 침묵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회피가 아니라 나를 더 성장시키는 충전의 시간이다.


출처 : 자기다움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5. 자기다워진다는것은

 

 

 

 

자기다움 서적 구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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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타스북스] 자기다움

자기다움이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 철학, 가치이다. 이러한 자기다움이 조직에 접목될 때 기업 역시 ‘우리다움’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성장해갈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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