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나의 마케팅 성지 순례기
2008년에 『런던, 나의 마케팅 성지 순례기』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이 글은 재편집 된 글이다)
제목은 여행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마케터의 시장조사 노트에 가까웠다. 만약 미국에서 썼다면 『뉴욕, 나의 마케팅 성지 순례기』라는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뉴욕보다 런던이 더 많은 영감을 준다.
그 책의 콘셉트는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의사가 일기를 쓰면 병원 일지, 군인이 일기를 쓰면 복무 일지, 마케터가 일기를 쓰면 시장 동향서가 된다. 마케터의 여행은 곧 시장조사의 성격을 띠고, 게다가 나는 잡지 편집장이기도 하기에 나의 여행은 곧 취재라고 할 수 있다. 보물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빛나는 보화를 하나씩 담아 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감성적이고 유쾌하게 접근하고 싶었지만, 결국 습관처럼 '마케팅 취재 일지'가 되고 말았다.
이 여행 기록을 '성지순례기'라 부른 이유는, 런던이란 도시가 이제는 익숙하고 무덤덤하게 바라봐도 될 만큼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면 깊은 곳의 마케팅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떨림은 나에게 내가 여전히 마케터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여행의 의미
여행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일을 위한 것이다. 나는 마케터로서 기도하는 마음, 겸손한 자세, 경건한 태도, 배우는 자세로 임하는 여행을 꿈꾼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성공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우연과 행운의 영역으로 여기지만, 마케터라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행자에게 낭만으로 보이는 풍경도, 현지인에게는 일상의 현실이다. 여행은 현실 위에 서 있어야 하며, 그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만 비로소 새로운 삶과 풍경을 훔쳐볼 수 있다.
여행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떠남이 아니라 돌아옴이다. 많은 이들이 20분의 결혼식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지만, 정작 50년의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여행자는 떠나는 동안만을 생각하고, 돌아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아마도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책은 런던 시장조사서인가, 여행서인가?" 굳이 정의하자면 '강력한 브랜드 론칭을 위한 런던 시장조사 여행 전략서' 정도가 되겠지만, 그런 명칭은 접어두고, 편안하게 생산적이고 관점 있는 여행의 기술서, 발견과 수집을 위한 여행기로 읽어주면 좋겠다. 특히 이 책이 여행 중보다 여행 이후에 더 유용하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1. 아직 여행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신혼여행지를 고민하는 예비부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해받지 않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원한다면 발리, 인생의 추억과 배움을 원한다면 런던."
배낭여행을 준비 중인 후배에게는 이렇게 조언한다.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면 뉴델리,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 싶다면 런던."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후 여행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강제 휴식이 필요하다면 뉴질랜드, 새로운 삶을 구상하고 싶다면 런던."
브랜드 론칭을 앞둔 클라이언트에게는 이렇게 권한다. "500억 매출을 원한다면 하라주쿠, 1,000억 매출 브랜드를 원한다면 런던."
첫 해외여행, 창업 아이디어를 위한 여행,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까지. 나는 모든 시작점에 런던을 추천한다. 일주일만 시간이 있어도 세계 일주보다 더 깊은 통찰을 얻고 싶다면, 역시 런던이다.
2. 런던으로 여행지를 정했다면
런던으로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LIFE'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LIFE는 단순히 삶이 아니라 Learning Innovation For Evolution, 즉 진화를 위한 혁신을 배우는 것이다.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통해 우리는 성과를 창출하는 기술을 익히고, 그것이 곧 노하우가 된다.
협상, 설득, 대화의 기술이 삶을 이끄는 기술이라면, 여행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술은 반복을 통해 향상되지만, 결혼생활처럼 반복할 수 없는 경험도 있다.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을 수는 있어도, 그때의 나도, 그때의 장소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감각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쇼핑이나 맛집, 사진을 위한 관광이라면 이 책은 과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수업이라 생각한다면, 이 책은 새로운 길을 안내할 것이다. 창조적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색다른 발견의 기술을 전해 줄 것이다.
런던에 관한 블로그를 보면, 미국 비자 문제로 런던을 택한 어학연수생, 여행 중 머물게 된 사람, 패션과 디자인을 배우러 온 사람 등 다양한 이유로 모인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는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지닌 이들은 여전히 런던을 선택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등 지식이다.
이 책은 런던의 역사나 관광지, 생존 기술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런던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통해, 나와 브랜드, 비즈니스, 미래에 어떤 적응력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런던은 역사, 문화, 기술이 융합하며 진화하는 도시다. 두바이처럼 판타지를 짓는 도시가 아니라, 과거를 기반으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도시다. 셰익스피어가 걸었던 골목, 2차 대전의 흔적이 남은 지하철, 처칠이 산책했던 길을 걸으며,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여행의 결과가 사진과 추억뿐일까? 아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깨달음과 지혜가 남는다. 여행에서 얻는 것이 많아지려면, 떠나기 전에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뭘 봤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중요한 건 내가 본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여행 지도에 나와 있는 것을 보려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런 방식으로는 도시를 알 수 없다.
–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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