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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배우는 ‘근본’, 브랜드의 머릿돌이 되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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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서현 

 

건축학은 어딜 가든 공과대학에 속해 있다.

‘자원을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란 정의를 단 공학적인 방법으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축물은 인간의 삶을 위해 지어진 것이기에 철저한 계산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코코샤넬은 “패션은 건축과도 같다. 그것은 비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바로, 서현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의 버전이다.

 

“건축은 절대 비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조직 방식이에요.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객체들을 조합해서 잘 체계화된 전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입니다. 괴테가 왜 건축을 보며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겠습니까. 음악은 비례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것은 체계의 문제죠.”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각각의 개체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조직’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조직에 대한 본질을 아는 것이다. 가족이 사는 집과 비즈니스를 하는 공간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조직을 이루는지 그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건축물은 엉뚱한 해답을 찾고 만다. 여기가 건축학과 인문학이 한데 포개지는 지점이다. 바로 ‘근본을 아는 것’ 말이다.

 

서현 교수는 어떤 질문을 던져도 ‘근본’이라는 중심에서 절대 멀어지지 않았다. 그 근본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것은 흉물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있어 ‘첫 책’이라고 꼽은 ‘누가복음’에서 그가 전율을 느낀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을 내내 꿰뚫고 있는 질문의 틀은 하나였다. 그것은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였다. 그 질문은 이천 년 내내 그랬듯이 이 책을 읽은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책을 열면 꿈틀거린다. 너는 누구냐.”

 


브랜드에서도 목숨을 걸었다는 건 단순히 팔기 위한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을 내 가치를 넣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건축도 똑같아요. 목숨을 건 건축물과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그 앞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느냐,
안 하느냐를 보면 단번에 알죠. 



건축 vs. 인문학, 
근본에서 시작하다

 

UnitasBRAND《건축을 묻다》라는 교수님의 저서를 보면 부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서현의 인문적 건축론’. 현재 저희도 브랜드와 인문학의 접점 , 더 나아가 ‘인문학적 브랜드’가 무엇일까, 하는 화두를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은 건축학에서 인문학적 요소를 어떻게 찾고 계신지 여쭤 보고 싶군요. 

 

서현(이하 '서')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국 한 가지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근본에 대한 질문’입니다. 만약 도서관을 짓는다고 합시다. 그럼 어떤 작업부터 해야 할까요? ‘도서관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부터 해야 합니다. 건축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 다음 질문들이 이어지죠.

 

 

결국 한 가지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근본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21세기 도서관의 모습은 과거와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등으로 말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질문은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첫 질문이 무엇인가요? 바로 ‘존재’에 관한 질문입니다. 너무나 근본적인 질문이죠.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말해 건축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학의 또 다른 이름은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문학이 무엇입니까? 그 근본을 아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질문은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첫 질문이 무엇인가요? 
바로 ‘존재’에 관한 질문입니다. 

 

 

UnitasBRAND 근본을 질문하여 그에 대한 답으로 탄생한 것이기에 100년이 지난 건축물이라도 단순히 역사적인 가치를 넘어 현재까지 그 존재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았느냐가 건축물이 영속할 수 있느냐의 관건이  아닐까 하는데요. 

 

 아쉽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100년을 거뜬히 넘긴 건물 중에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도 있어요. 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건축물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은 우연히, 어떤 것은 당연히, 어떤 것은 다행히, 그러니까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가치 판단할 수 있는 이유가 없이 존재하거든요. 쉽게 말해 불이 나면 사라지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면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잖아요.

 

 100년을 그 자리에 있었던 건축물들이 가지는 의의는 그것 자체로 인문학이에요.
건축물은 고착화된  개체잖아요. 지나간 시대를 목격한 증언자가 될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한 건축물만 남는다고는 할 수 없죠. 다만, 100년을 그 자리에 있었던 건축물들이 가지는 의의는 그것 자체로 인문학이에요. 건축물은 고착화된  개체잖아요. 지나간 시대를 목격한 증언자가 될 수밖에 없죠. 이탈리아에 가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메디치 리카르디 궁은 미케로초가 피렌체 최초의 르네상스양식으로 1460년 완공하였다 .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안뜰의 회랑

 

당시의 사회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었길래 이 건축물이 수용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건축물을 본다면, 그 건축물은 공간으로 구현된 역사책이 된다는 겁니다. 

 

그저 멋있다가 아니라, 도대체 당시 피렌체의 메디치 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길래 이런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당시의 건축가들은 왜 메디치가의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당시의 사회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었길래 이 건축물이 수용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건축물을 본다면, 그 건축물은 역사책의 한 부분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공간으로 구현된 역사책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보여주니까요. 그렇기에 앞서 말한 것처럼 건축학은 또다시 인문학이 되는 거죠.

 

 

UnitasBRAND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사실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은 각기 다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에 정답이란 없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서 지은 우리나라 건축물의 실제 예가 궁금합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을 꼽고 싶군요. 가보신 적이 있나요? 지금까지 미술관은 대단히 교조적라고 할 수 있어요. 대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죠.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서면 대부분 티켓을 끊는 홀을 시작으로, 옥돌을 통해 전시장에 들어가죠.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걸으며 그림을 관람하게끔 되어 있죠. 미술 작품이 화가의 작업실에 있을 때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 속칭 쓰레기장에 처박혀 있는 무엇이랑 똑같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미술관’이라고 하는 일종의 제도 안에 들어가 벽에 걸리는 순간 대단한 아우라를 가지며 제3의 객체가 됩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미술관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은 교조적인 기관이어야 하느냐, 
제도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미술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 그러니까 ‘권력’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과연 미술관이 제도화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꼭 교조적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그래서 홀이니, 옥돌이니 하는 기존의 미술관들이 갖추고 있는 모든 교조적인 형식을 없앴죠. 그곳은 여기가 국도인지, 전시장인지, 홀인지, 로비인지 모든 형식이 허물어져 있어요. 이렇게 미술관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은 교조적인 기관이어야 하느냐, 제도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쉽게도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영국에서 수학한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한 위대한 건축물을 만나기란 너무나 어려워요. 

 

 


건축가에게
브랜더의 DNA를 찾다

 

UnitasBRAND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건축물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반대로, 인문학적인 건축물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일 텐데요. 이것은 우리는 왜 인문학적이지 않은가, 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인문학적이지 않은 건가요? 

 

 건축에 국한시켜서 설명해 보면, 단적으로 말해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100년을 압축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성장하는 기간 동안에는 ‘인문학적 질문’, 그러니까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를 못 느끼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전통 건물로 얘기를 해볼게요. 기와집이라고 하면,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거기에 왕이 살든, 혹은 부처님을 모시고 있든, 아니면 비석을 모시던 사당이든 전부 똑같이 생겼어요.

 

 

기와집이 형식을 갖추기까지 두 개의 축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최적화이며, 다른 하나는 양식화예요.
최적화는 바로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이에요. 

 

 

이런 기와집은 약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형식을 갖추게 되었죠. 그런데 이 형식을 갖추기까지 두 개의 축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최적화이며, 다른 하나는 양식화예요. 최적화는 바로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이에요. 비바람이 들이칠 때 무너지는지, 집안에 들어갔을 때 쾌적한지, 냉난방은 어떻게 되는지 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동일한 답을 여러 번 얻어 낸 결과물로 기와집이라는 형식을 만들어 낸 거죠.

 

양식화는 근본이 무엇인지는 모른 채 그저 반복을 하는 겁니다. 
건축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면 우리나라는 이처럼 최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저 양식화하는 사람만 많았을 뿐이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최적화를 만들던 목수들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 왜 이 건물이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되었는지 모르게 됩니다. 그저 구전을 통해 방법만이 전해지게 되었죠. 이때부터 양식화가 되는 거예요. 양식화는 근본이 무엇인지는 모른 채 그저 반복을 하는 겁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답은 이것입니다. 건축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면 우리나라는 이처럼 최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저 양식화하는 사람만 많았을 뿐이죠. 

 

 

UnitasBRAND 그렇다면 최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현재 시급히 알아야 할 지식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건축가가 있는데요, 아마도 잘 아실 겁니다.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예요. 그는 위대한 건축가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건축가’입니다. 이렇게까지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건축의 역사를 통째로 바꾼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 전에는 건축가에게 건축을 의뢰한 고용인이 있었어요. 그 고용인이 의뢰한 대로 건축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지었죠. 하지만 르 꼬르뷔지에는 피고용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건물을 짓던 방식은 모두 쓰레기다,라고 외치며 우리는 앞으로 이런 도시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된다, 라면서 새로운 방식의 건물들을 지어서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말 그대로 진짜 ‘건축가’가 된 거지요.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르 꼬르뷔지에는 앞으로 이런 도시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된다, 라면서
새로운 방식의 건물들을 지어서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말 그대로 진짜 ‘건축가’가 된 거지요.

 

그가 이렇게 혁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건축가들은 에꼴 드 보자르라는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안 됐어요. 하지만 르 꼬르뷔지에는 에꼴 드 보자르의 문턱조차 밟지 않았죠.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얻은 수많은 경험은 그에게 기존의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부터 자유를 주었죠. 그렇게 그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며 혁명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려면, 그러니까 최적화하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려면, 그러니까 최적화하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그러한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컴퓨터는 왜 그래야만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반복만 하고 있잖아요. 르 꼬르뷔지에처럼, 스티브 잡스처럼 왜 그래야만 하느냐, 하고 질문해본다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요?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다. 공업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장에게 ‘집은 자연과 어울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동방 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확고히 한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며 그릇’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혁신적인 건축을 제안한다. 고층 건물을 비롯한 새로운 도시형태를 비롯하여 실제 마르세유에서 집합주택의 구상을 집대성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대표적인 작품이며, 특히 대담한 곡선 구성을 선보인 ‘롱샹의 성당’은 신앙심이 깊은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주민을 위해 100년간 수리가 필요 없게 지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무지(無知),
감동의 브랜드를 만들다

 

UnitasBRAND 유럽에서 만나는 성당을 보면, 종교적인 의미가 서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경외감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섬뜩한 말이지만 대체 몇 명이나 죽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건축물 하나하나가 고귀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겠죠. 장인 정신이 깃든 브랜드를 봐도 사실 그렇습니다. 스위스 고급 수제 시계 가운데 한 브랜드는 1년에 2분이나 늦는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수십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며 그 시계를 구입하거든요. 우리가 건축물 앞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신기하니까요.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죠. 노트르담 대성당을 볼까요? 어떻게 돌로만 그 시대에 저렇게 웅장한 성당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게 설명이 되나요? 안 되잖아요. 우리가 위대한 건축물을 보면 순간 멈칫하게 되는 것은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건물을 보는 순간 이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게 된다면 그것은 감동을 불러오지 않죠. 속된 말로 그냥 휴지 쪼가리라 해도 무방하죠.

 

무지(無智), 그러니까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감동의 근원이 되는 겁니다.
목숨을 건 건축물과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그 앞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느냐, 안 하느냐를 보면 단번에 알죠. 
 

 

 

무지(無智), 그러니까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감동의 근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말로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죠. 전 이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에서도 목숨을 걸었다는 건 단순히 팔기 위한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을 내 가치를 넣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건축도 똑같아요. 목숨을 건 건축물과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그 앞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느냐, 안 하느냐를 보면 단번에 알죠. 단순히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했다고 해서 목숨을 건 건물이구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경외감, 그걸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죠.

 

 

브랜드에서도 목숨을 걸었다는 건 단순히 팔기 위한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을 내 가치를 넣었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루이스 칸(Louis Kahn)의 건축물 CIRCLES IN ARCHITECTURE.

 

UnitasBRAND 무지함을 느끼는 건축물이 감동을 주는 것처럼 무지함을 느끼게 하는 브랜드도 감동을 주는 걸까요? 어쨌든 ‘목숨을 거는 것’만큼 감동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합니다. 인문학적 건축가로서 인문학적 브랜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루이스 칸(Louis Kahn)이라는 건축가가 있어요. 제가 르 꼬르뷔지에만큼 좋아하는 건축가인데요. 그는 실제로 제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건축의 방식을 그대로 몸소 실천한 사람이에요. 그는 건축을 설계할 때면 늘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는 건축을 설계할 때면 늘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요.

 

건축물이 완성될 때까지 이 질문만을 치열하게 하면서 완성해 나갔죠. 무지가 감동을 불러오는 이유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무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이스 칸은 이렇게 가장 근원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건물이 기능을 다하고 그 기능이 소진되어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을 때도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브랜드도 그렇지 않나요?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하고, 그저 집 안에 고이 모셔 놓았을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가치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브랜드를 원하죠. 정말로 그러한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할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네요.

 

루이스 칸(Louis Kahn)의 건축물 CIRCLES IN ARCHITECTURE.

 

브랜드도 그렇지 않나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가치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브랜드를 원하죠. 

 

 

제가 잘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학에서 대우 명제라고 하는 게 있어요.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명제의 대우 명제를 만들어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p는 q이다’라고 했을 때, 이것이 참이 되려면 ‘~q는 ~p이다’가 성립되어야 하죠. 제가 참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인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이 있어요. 이것의 대우 명제는 그것이 진리인지 알고 싶으면 그것이 너를 자유롭게 하는지를 물어보면 됩니다.

 

러니까 네가 자유롭지 않다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은 몽땅 거짓말이다, 라는 겁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 진리가 아닌 건 건축 작업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고수들을 한번 보세요. 고수일수록 자유롭습니다. 고수가 뭡니까? 진리에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진리여야 하는데, 그 진리의 시작은 근원이 되어야 하잖아요. 당신이 만약 자유롭지 않다면 그건 진리가 아니어서일 거예요. 

 

*루이스 칸 Louis Kahn (1901~1974)

에스토니아 출생의 미국 건축가다. 루이스 칸은 “도시란 소년이 그 속을 거닐면서 자기가 일생 동안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은지, 그 교시를 찾아볼 수 있는 장소다”라고 말했다. 칸에게 필라델피아가 그런 도시였고, 나중에 필라델피아의 도시계획안을 제안했다. 그는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전체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건축물을 보았으며, 절제된 형태 속에 빛과 공간을 상호 연결시키는 영감과 사색의 공간을 창조했다. 예일대학교 미술관 증축을 비롯, 대표작으로는 캘리포니아 소크 생물학연구소, 필립 엑서터 도서관, 킴벨 미술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이 있다.

당신의 브랜드(기업)는 최적화를 위해 뛰고 있는가, 아니면 양식화된 모듈을 덮어쓰기에 분주한가?

서 교수의 이야기 중 적어도 ‘최적화’와 ‘양식화’는 브랜드 런칭을 앞둔 예비 경영자라면, 그리고 깨인 브랜더라면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화두다. 이 두 단어가 브랜드가 갈 수 있는 두 갈래 길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의대로 ‘최적화’란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얻게 되는 답이며, ‘양식화’란 근본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반복하는 일이다. 이를 브랜더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꿔 보자면 최적화란 고객의 필요와 욕구, 그리고 욕망과 그것을 해결 혹은 충족시킬 수 있는 재화의 본질을 골몰히 연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즉 ‘혁신’이며, 양식화란 (좋은 말로 표현해) 벤치마킹 혹은 미투(me too)브랜드가 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말로는 최적화를 외치지만 대부분 양식화의 길을 걷게 되지 않던가.

‘나는 왜 이 브랜드를 런칭하는가? 즉 런칭과 브랜드의 why를 끊임없이 되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할 때, 그리고 그것이 곧 구매자의 구매 이유가 될 때 많은 기업이 원하는 신시장 창조,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의 기업은 현재 최적화를 위해 뛰고 있는가, 아니면 양식화된 모듈을 덮어쓰기에 분주한가?


서 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을 이루는 공간 조직은 사회조직의 물리적 구현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고, 그 사회를 알기 위한 방편으로 여행과 독서가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저서로는《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건축을 묻다》《또 한 권의 벽돌》 등이 있다. 해심헌, 김천상공회의소, 효형출판사옥 등의 건물을 지었으며, 비거주 구조물의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근본, 브랜드의 머릿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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