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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 공감의 브랜드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6. 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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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인제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강신익

 

소위 잘 나가던 의사에서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학철학, 다시 말해 인문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의사가 아닌 ‘인문학자’가 되어 있었다. 인제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강신익 소장은 이러한 자신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한다. 오히려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을 도구로 알고 있죠. 그래서 인문학을 제대로 못 만나는 겁니다.”

그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 보자. “인문학은 ‘삶’과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은 상아탑에 갇혀 삶과는 전혀 맥락이 없는 ‘데칸쇼’ 일뿐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이게 인문학인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문학이 도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인문학은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강 소장은 우리에게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브랜드 인문학이라, 브랜드에서도 인문학을 도구로 삼으려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브랜드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수를 세기 전에 강 소장이 말한 ‘삶과의 맥락’에서 인문학이 어디쯤 서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봐야 하는 것이 아마도 첫 번째 수순일 게다. 

 


소비자들이 모를 것 같지만, 뒤셴웃음을 짓는 브랜드를 용케 찾아낸다는 거죠.
‘공감’ 은 진심을 담보해야 하거든요.
그 의도를 의심치 않고 좋은 브랜드라고 단언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뒤셴웃음을 짓지 않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인문학,
위험한 세상을
꿈꾸다 

 

UnitasBRAND 인터뷰의 시작은 아마도 여기서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의사’로 활동하다가 모든 것을 접고 의학철학, 그러니까 인문학을 공부하러 훌쩍 떠나셨습니다. 지금은 의사보다는 인문학자로 불리는데요. 의학에만 몰두하다가 인문학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소장님이 궁극적으로 얻게 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장님이 정의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요?

 

강신익(이하 '강') 의사였을 때 시쳇말로 지금보다 돈도 몇 배 더 벌었죠. 경제적 삶의 수준으로 보자면 상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죠. 

‘너는 왜 사니?’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어요. 

 

아마도 저뿐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왜 살까요?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죠.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에 떠밀려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갑니다. S대에 가기 위해,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넓은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 이것이 목표가 된 채 살아갑니다. 왜 이것을 얻어야 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러니 ‘반성’, 즉 되돌아보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고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에 떠밀려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목표가 된 채 살아갑니다. 왜 이것을 얻어야 하는지 전혀 몰라요.

인문학이 뭐냐고요? 바로, 잠시 멈추어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딸’이라고 불리는 한비야 씨는 아예 인문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끊임없이 ‘나는 왜 살까?’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따라다니며 살지 않습니까. 그녀야말로 인문학자죠. 인문학이란 절대 데칸쇼, 그러니까 데카르트나 칸트, 쇼펜하우어를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저는 이런 진지한 고민을 했고 지금은 의사 때보다 행복합니다. 그게 인문학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거예요. 

 

 

인문학이란 절대 데칸쇼, 그러니까 데카르트나 칸트, 쇼펜하우어를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UnitasBRAND 저희가 만난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부하더군요. 소크라테스 때부터 고민했던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는 ‘왜 사는가?’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브랜드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면서 ‘왜 이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은 브랜드는 소위 ‘지속성’을 넘어 ‘영속성’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거든요. 그렇다면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결정적인 혜택(?)은 ‘질문’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현재를 ‘전복’시키는 질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당장은 아주 기발한 것이라 해도 언젠가는 ‘박제’되는 순간이 오잖아요. 멈춰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생각(critical thinking)이에요. 현재의 상태를 끊임없이 비딱하게 바라보는 겁니다. 물론 일부러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니에요. 주어진 것을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박제되는 그 순간에 대안적인, 혹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져다주죠.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혜택은 현재를 전복시키는 질문이라는 겁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현재를 ‘전복’시키는 질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인문학은 현재에 대한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문학은 언제나 당대의 시각으로 보면 위험한 세상을 꿈꾸죠. 하지만 결국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시대는 새로운 가치를 만나게 됩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스티브 잡스 아닙니까? 그는 끊임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애플의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이게 된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가 인문학적 사고가 애플의 성공 비밀이라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죠. 

 

 


이타적 유전자, 
이타적 브랜드


UnitasBRAND ‘인문학은 전복을 꿈꾸는 것’이라는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어찌 보면, 브랜드도 같은 꿈을 꾸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제가 주목하고 있는 브랜드 중의 하나가 탐스슈즈라는 브랜드입니다. 이 브랜드는 한 켤레의 신발을 사면 또 한 켤레가 제3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소위 이타적 브랜드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이 브랜드는 탐스 아이웨어라는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슈즈와 마찬가지로 안경을 구입하면 제3세계의 안과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일정 금액이 기부됩니다. 이거야말로 기존의 브랜드를 전복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거 정말 좋은 브랜드군요! 흥미롭습니다. ‘이타적’이라는 단어를 기업이 나 브랜드에 덧대었을 때 마케팅적 술수인 경우가 다반사죠.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탐스슈즈, 탐스아이웨어는 진짜 이타적인 것 같아 보이는군요. ‘이타적’이라는 말은 사실, 제가 지금 굉장히 주목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감’인데요. 저도 그렇지만 인문학계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화두라고 할 수 있죠.

 

 

약육강식의 경쟁 체제에 피곤해진 사회는 그 대안을 찾고 그 관점에서 ‘공감’을 바라보게 되었죠.
그 결과 중 하나로 사회적 기업이나 이타적 브랜드가 나타난 것이지요. 

 

 

최근 사회적 기업의 형태들이 많이 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기부와 같이 이타적인 행태를 취하는 다양한 사업이나 기관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것은 지금까지 지나친 ‘경쟁’으로 일관해오던 우리 사회가 피곤해진 결과라고 해석해 볼 수 있거든요. 사회는 늘 균형을 찾기 마련입니다.

 

 

약육강식의 경쟁 체제에 피곤해진 사회는 그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적 관점에서 ‘공감’을 바라보게 되었죠. 그 결과 중 하나로 사회적 기업이나 이타적 브랜드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데 ‘공감’이라는 것은 원래 우리 몸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원래 인간의 본성이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타적인 브랜드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타적인 브랜드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UnitasBRAND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는 하루 이틀 논쟁의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무 자르듯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어쨌든 우리의 몸속에 이타적인, 그러니까 공감이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군요. 언뜻 생각하기에 공감은 뭐랄까요, 수많은 경험과 압축된 지혜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공감이 이미 본능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니 안도감마저 느껴집니다. 공감은 우리의 몸속 어디에 내재되어 있는 건가요? 

 

 최근 10년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입니다.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인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 연구진이 발견한 거울 뉴런은 그 이름이 말해 주는 것과 같이, 내가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거울을 보는 것같이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건데요. 리촐라티 연구진은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보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행동하는 것처럼 뉴런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이 거울 뉴런을 발견했어요.

 

ⓒinspireone.in

 

이 뉴런은 우리의 뇌 여러 곳에 위치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 이 뉴런들은 활성화돼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이 거울 뉴런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폐증의 특징 중의 하나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거잖아요. 이런 이유로, 거울 뉴런은 공감 뉴런이라고 불리죠. 

 

자폐증의 특징 중의 하나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거잖아요. 
이런 이유로, 거울 뉴런은 공감 뉴런이라고 불리죠. 

 

실제로 네덜란드의 한 식당에서 한 이 실험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식당 종업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이런 실험을 해보았어요. 한 그룹은 주문을 받을 때 평상시와 같이 행동을 하게 했고, 한 그룹은 손님의 제스처를 손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했죠. 예를 들어 손님이 머리를 만지면 종업원도 머리를 만지게끔 말이에요. 거울 뉴런을 활성화시켜 본 거죠. 

 

 

자, 실험의 결과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평상시대로 행동한 종업원보다 손님의 행동을 따라한 종업원의 팁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행동을 따라 했을 뿐인데도 종업원으로부터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낀 거 아닌가요? 이것은 공감이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뿌리 깊게 우리 몸속에 배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지요.

 

*거울 뉴런 mirror neuron

엄마의 표정을 곧잘 따라 하는 아기,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친구, 옆자리 동료를 따라 하품하는 나. 이 모든 상황에 작동하는 신경세포가 거울 뉴런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거울 뉴런은 전두엽 전운동피질 아래, 두정엽 아래, 측두엽, 뇌성엽 앞쪽에 분포하고 있는데 모방을 통한 학습에 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경험으로도 직접 그 일을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하여 결국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 뉴런으로 인해 인간은 부모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법을 복사, 습득해 가며 다양한 문화를 생산해 세대에 걸쳐 전파할 수 있었다. 거울 뉴런의 발견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것은 공감이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뿌리 깊게 우리 몸속에 배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지요.

 

 

UnitasBRAND 브랜드는 결국, 그것을 만드는 브랜더의 유전자가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만약 우리의 몸속에 공감 뉴런이 무의식처럼 내재되어 있다면 탐스슈즈 말고도 공감의 유전자를 장착한 브랜드의 출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더 많이 출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사회는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거든요.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경쟁’이 활성화된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신경과학의 가설 중의 하나가 ‘Fire together, wire together’라는 말이 있어요. ‘함께 활성화된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9·11 테러 사건과 같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그때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기억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일어나거나, 혹은 반복되거나, 각별한 의미를 지니면 각각의 사건들을 관장하는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경험 구조를 만든다는 거예요. 

 

 

신경과학의 가설 중의 하나가 ‘Fire together, wire together’라는 말이 있어요.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동시에, 혹은 반복되거나, 각별한 의미를 지니면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경험 구조를 만든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려서부터 매일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자랐다고 한다면, 공포나 분노를 활성화시키는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결국 뇌의 물리적 구조마저 굳어집니다. 그래서 비슷한 순간이 연출되면 그 부위가 쉽게 활성화되는 거죠. 다시 돌아가,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경쟁의 뇌를 끊임없이 활성화시켰습니다. 그래서 다르게 바라보거나 생각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경쟁 구도로 바라보도록 뇌가 고착화되어 버린 거죠.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경쟁의 뇌를 끊임없이 활성화시켰고 조금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경쟁 구도로 바라보도록 뇌가 고착화되어 버린 거죠.

 

하지만 공감의 뉴런이 분명히 우리의 몸속에는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의식적으로 자극해 준다면 경쟁에서 공감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쉬울 수도 있어요. 이미 자극은 시작된 것 같지 않으세요? 앞서 말씀해 주신 탐스슈즈라는 브랜드가 나온 것만 봐도 엄청난 변화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경쟁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과 공감이 균형을 맞추어야 함을 말하는 거예요. 경쟁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것이 과도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겁니다. 

 


브랜드, 
공감의 
본성을 깨우다

 

UnitasBRAND 소장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일종의 ‘공감 브랜드’란 어떤 모습일까를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장님이 만약 공감 브랜드에 대해 정의해보신다면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이런 예를 들어 볼게요. 제가 학교로 출근할 때 항상 지나는 톨게이트가 있어요. 그곳을 지날 때 톨게이트비를 받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늘 무뚝뚝한 표정으로 저를 대해요. 그런데 어떤 날은 온 얼굴에 웃음을 덮고 제가 섬뜩할 정도로 친절을 베풉니다. 하지만 그 웃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뒤셴웃음(duchenne smile)이라고 하죠, 거짓 웃음을 짓고 있어요. 그런데 그 뒤셴웃음도 하루 이틀 후면 사라지고 평소대로 무뚝뚝함으로 돌아갑니다.

 

소비자들이 모를 것 같지만, 뒤셴웃음을 짓는 브랜드를 용케 찾아낸다는 거죠.
‘공감’ 은 진심을 담보해야 하거든요.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에게 뒤셴웃음을 보였던 그날은 상사에게 친절하지 못하다고 주의를 받은 날이 아닐까 하고요. 주의까지 받다 보니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으며 친절을 보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이거예요. 소비자들이 모를 것 같지만, 뒤셴웃음을 짓는 브랜드를 용케 찾아낸다는 거죠. ‘공감’ 은 진심을 담보해야 하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탐스슈즈의 의도를 저 또한 공감하고 그 의도를 의심치 않고 좋은 브랜드라고 단언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뒤셴웃음을 짓지 않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소비자들이 모를 것 같지만 뒤셴웃음을 짓는 브랜드와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를 용케 찾아낸다.

 

 

UnitasBRAND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단지 제품을 소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죠. 사람들은 이제 제품이 지향하는 가치를 소비합니다. 브랜드는 점점 보이는 제품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죠. 이 가치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뒤셴웃음이 통하지 않는 거죠. 아마도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브랜더들은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를 만나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의학 논문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러티브 메디슨(narrative medicine)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의학’이죠.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그 자체로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병에 걸렸고,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 이 모든 것이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의사가 병균을 찾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 병균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 초점을 맞춘 
 내러티브 메디슨(narrative medicine)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그래서 과거에는 의사가 병균을 찾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 병균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 초점을 맞춘 내러티브 메디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너무나도 유명한 플라시보 효과가 바로 내러티브 메디슨의 예라고도 볼 수 있어요. 가짜 약을 주었는데도 환자의 몸이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약에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약에 대한 의미를 가지게끔 한 거니까요. 

 

 

 

가짜 약을 주었는데도 환자의 몸이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약에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약에 대한 의미를 가지게끔 한 거니까요. 

 

 

내러티브 메디슨을 통해 환자를 치료한 경우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환자들의 호전이 훨씬 빨랐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야기를 통해 환자와 의사 간의 ‘공감’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이에요.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슈퍼스타 K’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죠. 방송에 개인적인 스토리로 출연하는 다양한 뮤지션들을 보세요. 그들이 이슈가 된 것은 노래 실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잖아요. 대중들이 그 방송을 보면서 소비한 것은 노래라는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이 소비한 것은 노래라는 상품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라는 것은 공감을 만들어 주는 너무나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며 공감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두 사람 모두 1위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야기’라는 것은 공감을 만들어 주는 너무나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브랜드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만약 CEO들이 저에게 공감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라’고 얘기해주겠어요. 1년 동안 회사를 시쳇말로 때려치우고 배낭여행을 갔다 온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어요.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브랜드의 이야기가 되어, 소비자들의 마음에 공감 뉴런을 활성화시킬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부터 그 브랜드를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꼭 그런 브랜드를 만나게 되길 기다려 보겠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브랜드의 성공은 가치 실현와 함께
브랜드 재화의 본질적 속성의 경쟁력이 필수이다. 

‘착한 소비’ ‘이타적 소비’라는 용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용어만큼이나 식상하지만 일견 감사한 것은 이런 단어의 등장으로 기업 활동의 태도가 변하기도 했고(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식의 변질적 행태도 부지기수지만) 태생 자체가 선하다 볼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등장도 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점은 (특히) 사회적 기업의 경우 강 소장이 짚어낸 ‘공감’의 코드는 충분하나 ‘거기서 끝!’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해당 재화가 가져야 할 본질적 속성에서의 경쟁력이 없다.
선한 기업으로 가치 실현과 수익 창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받는 탐스슈즈가 신발의 기본적 속성(편안함 및 패션 아이템)을 외면했다면, 파파라치가 찍은 미국 셀러브리티들의 사진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높거나 낮았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분명 브랜드의 메시지와 핵심가치는 심연의 공감을 살 수 있어야 강력하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소비자의 공감은 일회성에 그칠 것이다.


강신익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후 구강외과 수련을 거쳐 15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불혹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웨일스 대학 스완지 캠퍼스에서 의철학과 의료인문학을 공부하고 귀국, 현재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공저로는 《의학 오디세이》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등이 있다.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의 몸을 의학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화생물학, 면역학, 인지과학 등 생물과학의 연구성과를 이용해 삶의 다양한 국면을 해명할 방법을 찾는 데에 몰두 중이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下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이타적 유전자, 공감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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