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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Simplicity는 Integrity다

브랜딩/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브랜드

by Content director 2022. 5. 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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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view with 문사철 기획위원  강신주

 

 

“잠깐만요, 그런데 이 분은 이제 정직원이 되었습니까?”  
인터뷰 중 강신주 박사가 1차 인터뷰 때 따라온 수습 에디터에 관해 편집장이자 발행인인 나에게 대뜸 질문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말 그대로 ‘당황’스러웠다. 이 질문이 나오기 직전까지 우리는 경영자와 브랜드 간의 일치성과 진정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기업에서 신입사원들을 소위 일회성 인간, 혹은 잉여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현실이라고 개탄하던 차였다.
“아직 아닙니다. 한 달 남았습니다.” 
“아, 빨리 정식직원으로 발령 내세요, 잘하잖아요.”
그 자리에서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상황도 아니었다. 
강신주 박사는 내 눈을 보면서 간절히 그 대답을 원했다. 
“아마 큰 무리가 없으면 정식 에디터가 될 것입니다.”
“그래요? 꼭 정직원시켜 주세요.”
수습 에디터의 얼굴은 계속 붉어졌고, 
따라온 선배 에디터도 나의 얼굴을 살피면서 당황스러워 했다. 
나도 내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평상시 얼굴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강신주 박사가 왜 이런 내정 간섭(?)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분의 철학은 생각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행복과 진실함 그리고 순수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었다. 

 

 

“힘은 인문학이 아니잖아요.”

진정한 선은 언제나 단순함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톨스토이

 


자기 자신이 누군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것을 브랜드에 담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인문학적인 것이며, 심플리시티입니다. 


 

인문학의 
Simplicity

 

UnitasBRAND 예전에 가전제품을 만드는 임원들과 ‘브랜드 철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왜 그 회사에서는 냉장고를 만들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짐작하건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어느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한편 유니타스브랜드는 ‘*왜 우리 브랜드가 존재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며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죠. 그러한 브랜드들을 만나며 내린 결론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나온 *철학이 곧 브랜드 전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자기 철학이 있는 브랜드들은 시장 경기에 상관없이 늘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고수할 것인지에만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자기 기준이 없는 브랜드들은 생존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뭐든지 하고 있었지만, 결국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왜?’라는 질문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 브랜드의 생사(生死)를 가르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자들에게도 ‘왜?’라는 질문은 굉장한 화두일 텐데요.

 

강신주(이하'강') 제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들에게 이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지요.《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서문에도 썼지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전자를 맨얼굴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페르소나(persona)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페르소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붙들고 살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진짜 나의 모습을 직면하지 못한 채 결국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그저 부모님이, 혹은 선생님이 혹은 이 사회가 자신에게 강요한(?) 욕망대로 사는 거죠.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페르소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붙들고 살기 때문이에요.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만약, 이성복 시인의 ‘연애에 대하여’라는 시를 읽었다고 합시다. 이 시를 읽고, ‘아, 연애란 이런 거구나! 필요 없네!’ 하고 돌아서는 건 너무 불행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소 부딪쳐 가며, 결국에는 이성복 시인의 결론과 똑같이 난다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진정한 삶이죠.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그래서 ‘자기 욕망’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인문학을 ‘자기 이해의 학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을 보든지, 무엇을 경험하든지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거든요. 많은 분들이 그저 인문학을 무조건 사람을 이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적 법칙은 일종의 대화라고 할 수 있어요. 하늘의 별을 보면서는 우주 속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처럼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보든, 어떤 것을 경험하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오고가는 보이는 대화든, 보이지 않는 대화든 다양한 대화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배워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를 비춰 주는 거울로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저 인문학을 무조건 사람을 이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왜 어떤 시를 보면, ‘아, 이 시인 한 번 만나 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이처럼 자기 이해를 통해 시인이 시를 쓰면 사람들은 그 시인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에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에요. 

 

 

UnitasBRAND ‘왜 우리가 냉장고를 만드는가?’에 대답하지 못하면, 고객이 ‘왜 당신의 냉장고를 사용해야 합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판매사원은 엉겁결에 “절전형입니다. 내용물이 많이 들어갑니다”라고 기계의 성능을 대답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다른 냉장고 판매대에서 “우리 회장님도 이것을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판매대로 사람들이 뛰어갈지도 모릅니다. 콜라와 라면의 가격이 우리 마트가 가장 싸다고 말하는 어느 마트 회장님의 자동차 연비는 얼마나 될까? 또 라면을 생산하는 기업의 회장님은 하루에 몇 번 그 라면을 먹을까? 그런가 하면,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장님의 자녀들이 게임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브랜드가 자기 이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질문이 아니라 만나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시를 보면 그 시인이 보고 싶어야 하고, 영화를 보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나 보고 싶어져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며, 영화가 아니에요. 그저, 흉내 낸 겁니다. 왜 만나 보고 싶어질까요? 거기에는 ‘리얼리티’가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것의 흉내 내기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거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리얼리티를 만들어 내는 거지요. 그 리얼리티를 느낀 사람들은 ‘아, 나도 저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이 분명하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가 아니라 ‘공명’을 불러일으키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흉내 내려고 하죠.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남과 다르게 태어났어요. ‘다르게 생각하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은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맨 얼굴을 찾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는 것이 되겠지요. 그래서 거듭 말하면 인문학이란 바로 ‘나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이에요. 저는 이것을 ‘심플리시티(simplicity)’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남과 다르게 태어났어요. ‘다르게 생각하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은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맨 얼굴을 찾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솔직함 혹은 정직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나라 등산객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집 앞의 앞산 뒷산을 올라가도 모두 고어텍스 소재로 만든 등산복을 입는다는 거예요. 고어텍스는 전문 산악인을 위해서 만든 거잖아요. 이것은 심플리시티가 아니에요. 자신의 방식이 아닌, 고어텍스 소재가 좋다는 말에 그것의 용도도 모른 채 입는 것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한 거니까요.

 

BRAND Think 
*왜 우리 브랜드가 존재해야 할까?

위의 질문에 대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다!’ 정도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브랜드로서 진정한 의미의 존재 목적이 아니다. 유니타스브랜드가 만난 훌륭한 브랜드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확고한 철학에 기반해 ‘예술을 생활 문화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등으로 명시화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고 있었다. 더불어 ‘브랜드 창업’ 특집에서는 창업 준비에 앞서서 이 질문에 꼭 대답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럼으로써 내부 조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고 창업자의 내적 에너지를 고양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고객의 구매에 영향을 미쳐 수익 증대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유니타스브랜드 Vol.20 p26 참조).

 

BRAND Think 
*철학이 곧 브랜드 전략

흔히 전략을 ‘차별화와 경쟁적 우위를 얻는 것’ 혹은 이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략’과 ‘브랜드 전략’의 차이는 무엇을 위해서 전략을 펼치느냐, 즉 전략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의 유무에 따라 나타난다. 아이디어로 점철된 전략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이나 경쟁자들에 의해 쉽게 카피된다. 그러나 브랜드 철학을 소유한 전략은 쉽게 카피할 수 없다. 전략 실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과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브랜드 전략은 철학을 완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유니타스브랜드 Vol.7 p18 참조).

 

*페르소나(persona)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본래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에서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연극 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연극이 짧기를 바란다면 짧을 것이고, 만일 길기를 원한다면 길 것이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 구실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한 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르소나는 배우의 본 모습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이 진정한 주체인 욕망을 숨기면서 외형상으론 페르소나로 대리되는 삶을 사는 이중적 존재라 명하며 이러한 자아의 실체(맨얼굴)와 페르소나 사이의 불일치가 인간 존재의 결여와 결핍의 부정적인 측면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적 법칙은 일종의 대화
소크라테스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숙련된 대화를 통해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 즉 지적 산파인 변증술(dialectic)을 통해 획득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그의 스승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철학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대부분 어떤 주제에 대해 무지를 가장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주제에 관한 가장 충실한 지식을 유도해 내고 있다. 대화는 항상 어떤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논함으로써 시작된다. 대화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하도록 강요함으로 마침내 의도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크라테스가 질문자가 되어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대화가 질문과 대답의 연속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데서 변증법적인 대화라고 볼 수 있으며, 질문은 연속적이며 발전적이기 때문에 그에게 답을 해 가는 대화자는 자신의 생각을 발전적으로 정리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산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가치라는 것이 안에서도, 밖에서도 동일해야 심플리시티라고 할 수 있어요. 

 

 

UnitasBRAND *김수영 시인을 ‘위대한’ 시인이라고 쓰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이유를 ‘솔직하고 정직함’이라고 하셨더군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예로 들면서, 당시 지식인이라면 민주투사인 척할 그때에, 김수영 시인은 오히려 자신의 소시민적인 나약함을 정직하게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를 통해 고백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박사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심플리시티란 김수영 시인과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겠군요. 

 

‘위대한’이라는 말까지 붙여 가며 김수영 시인을 설명한 이유는, 자신을 치장하던 가면을 대중 앞에서 과감히 벗어던진 용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플리시티라는 겁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것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면, 이 정직이라는 것이 어떤 곳에서의 정직이냐라는 겁니다.

 

 

나의 시선으로 안에서도 보는 나와 바깥에서도 보는
내가 일치했을 때만이 심플리시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산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가치라는 것이 안에서도, 밖에서도 동일해야 심플리시티라고 할 수 있어요. 안과 밖이 분리되면 심플리시티는 깨지고 마는 겁니다. 여기서 안과 밖이 일치했다는 것은 나의 시선을 통해서 보았을 때 일치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의 시선으로 안에서도 보는 나와 바깥에서도 보는 내가 일치했을 때만이 심플리시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인문학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궁극적으로 ‘시인’ 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을 직면하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토해 낸 시인이야말로 인문학자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는 거지요. 

 

*공감

공감이라는 말의 기원은 19세기 미학과 심리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감은 제한적으로나마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여 같은 기분을 경험하거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적절히 전달하여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도덕의 밑바닥에는 ‘공감(sympathy)’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으로 인해 사람은 상호 간에 주고받는 감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영국의 논리학자 허치슨은 공감의 기능을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흄과는 달리 공감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자연적인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제3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강조한다. 그 역시 흄의 이론을 빌려와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회관계가 도덕적 판단과 행동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 같은 그의 주장은 《국부론》에서 시장의 원리로 확장된다.

 

*김수영 시인

김수영 시인은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에서 일어서고자 하였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의 중 한 사람이며 1970~1980년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 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 시를 발표한다. 1965년 발표된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김수영 시의 본질이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못난 소시민적 본질을 시를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비판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한층 부풀었던 ‘자유와 사랑과 양심에의 희망’이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이 된 상황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조롱하며 한 때 희망을 외쳤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풍자)하고 있다.

 

Simple 

Apple

 

UnitasBRAND 심플리시티가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인문학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정직함이 심플리시티라면, 혹시 그러한 심플리시티가 느껴지는 브랜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사님이 생각하는 가장 심플리시티한 브랜드는 어떤 것인지 지금 고민해 보신다면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저는 애플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 구입한 애플 제품은 노트북 시리즈 중의 하나인 맥북 에어(Mac Book Air)인데요. 사실 심플리시티와는 상관없이 노트북을 열었을 때 반짝거리는 사과 심벌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손길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 노트북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것이 심플리시티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스티브 잡스가 이것을 직접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심플리시티란 안과 밖이 같은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애플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즉, 스티브 잡스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밖으로 꺼낸 모습이 애플의 제품이라는 거죠.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이것을 사용해 본 후, ‘내가 써 보니 참 좋더라, 너도 써 봐라’는 식으로 애플의 제품을 저에게 건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말해, 애플에서 나온 제품들을 자신이 직접 써보면서 스스로 편리하고, 편안하고, 또 예쁘다는 것을 납득당해(?) 그것을 소비자에게 팔려는 목적보다는 소개시켜 줬다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스티브 잡스의 책상 위에도 이 맥북 시리즈 중의 한 제품이 올려져 있지 않았을까요?

반대로, 다른 컴퓨터 브랜드의 CEO 책상 위에는 어떤 컴퓨터가 올려져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가 올려져 있을까요?

 

우리가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 플라톤과 대화하는 것 같고, 또 니체의 책을 읽으면 니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잖아요. 애플을 쓰고 있으면 스티브 잡스와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좀 전에 시를 읽으면 그 시인이 만나고 싶어져야 한다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애플을 쓰면, 스티브 잡스가 만나 보고 싶어집니다. 

 

BRAND Think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정직함

아쉽게도 기업의 철학, 비전 등으로 세워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I)와 소비자가 인식하는 BI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갭이 늘 존재한다. 갭이 거의 없이, 즉 브랜드 내부(안)와 소비자가 보는 브랜드 외부(밖)가 매우 흡사한 브랜드의 경우 그들의 메시지를 매우 정직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제품, 서비스, 광고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셈이다. 이른바 높은 수준의 브랜드 통합성과 정직성을 가진 것으로 장기적인 브랜드 경영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유니타스브랜드 Vol.11 p167 참조).

 

 

처음에는 왜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하고 생각해 봤더니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다른 기계들은 각각의 기능이 따로따로 되어 있는데,
애플은 서너 가지가 하나로 응축되었기 때문이더라구요. 말 그대로 ‘심플’해진 거죠! 

 

 

 

UnitasBRAND 애플의 심플리시티를 이러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 이 무척이나 흥미롭군요. 일단, 스티브 잡스의 책상 위에는 맥북이 올려져 있을 거라는 것에 저도 한 표를 던집니다. *애플이 심플리시티한 브랜드라면 이것은 다른 말로 가장 인문학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인문학적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좋은 브랜드란, 결국 인간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브랜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브랜드라고 할까요. 이것을 인문학적인 브랜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적인 가치를 표방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기계에 종속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를 다스리게끔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기계에 압박받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애플 제품을 쓸 때 익숙하지 않아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긴 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용법이 익숙해지고 나니, 그 후로는 애플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을 사용법 하나 읽어 보지 않고 아주 쉽게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왜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하고 생각해 봤더니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다른 기계들은 각각의 기능이 따로따로 되어 있는데, 애플은 서너 가지가 하나로 응축되었기 때문이더라고요. 말 그대로 ‘심플’해진 거죠!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가치를 ‘심플(simple)’이라고 얘기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은 위대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신들은 위대한데 이제까지 기계에 통제당하느라 힘들었죠? 그러나 이건(애플은) 심플해요. 나는 당신들의 노예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을 쓸 때는 내가 기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계가 나에게 맞게 적응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애플은 30대 초반은 물론, 40대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원래, 새로운 기계는 얼리어답터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이잖아요. 거꾸로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애플이 ‘노예가 되어 드리겠다’고 한 겁니다. 당신에게 만만한 기계, 한번 해볼 만한 기계라는 도전을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애플은 절대로 소비자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아요. 오히려 애플을 사는 사람들이 애플을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마음껏 변형해 가며 써주길 원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애플은 적어도 몇 년 전에 이 ‘심플’이라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문명사적 통찰을 했다는 거지요. 애플이 심플을 외쳤을 당시가 1970~1980년대였는데, 그때만 해도 복잡한(complicate)것이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때였어요. 그런데 애플은 심플을 말한 겁니다. 그래서 당시는 몇몇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지만, 결국 심플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 대중의 제품이 되어 버린 겁니다. 

 

BRAND Think 
*애플이 심플리시티한 브랜드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브랜드, 즉 그들이 밖으로 소비자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내부의 기업 철학이 구분 없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는 브랜드를 ‘뫼비우스 경영을 하는 브랜드’로 칭하기도 한다. 이런 브랜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애플에 대한 내용은 ‘디자인 경영’ 특집을 통해 다룬 바 있다(유니타스브랜드 Vol.10 p240 참조). 

 

 

네, 저는 심플은 현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UnitasBRAND *플은 많은 브랜드에서 현재 추구하는 컨셉 중 하나입니다.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는 궁극의 목적이기까지도 합니다.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결국 애플은 몇 년 후 브랜드에서 추구하게 될 이 심플이라는 가치를 오래전에 예측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심플은 현재의 시대가 표방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데요. 

 

  네, 저는 심플은 현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등산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아웃도어 브랜드만 봐도 심플이 얼마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루프나 암벽 타는 장비의 경우 예전에는 너무나도 복잡했죠. 언뜻 보면, 전문가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너무나도 심플해져서, 등산 초보자라도 손을 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제 중요해집니다. 
같은 심플이라 하더라도, 남을 흉내 내고 있느냐 아니냐가 나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제 중요해집니다. 같은 심플이라 하더라도, 남을 흉내 내고 있느냐 아니냐가 나뉩니다. 그러니까 심플리시티이냐 아니냐가 구분된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스티브 잡스는 심플이라는 시대정신을 읽기도 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심플리시티를 추구했다는 겁니다. 자신이 만든 제품에 스스로가 감동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감동받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만든 제품에 대해 스스로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애플 제품에 대해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거듭 강조하지만, 심플리시티를 위해서는 시인이 되어야 해요. 자신의 깊은 이해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해 내는 시인 말이에요. 

 

BRAND Think 
*심플은 많은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컨셉 중의 하나

애플뿐만 아니라 필립스, 무인양품 등은 심플을 컨셉으로 삼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이는 브랜드를 가시화하는 디자이너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받는데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Emptiness(비움)’를 추구하며 무인양품의 톤앤무드를 이끌고 있다. 이들을 비롯, 디자인계의 ‘Super Normal’ 운동을 이끌고 있는 나오토 후카사와와 재스퍼 모리슨은 전 세계적인 디자인 사조가 Simple이라는 하나의 추구점 혹은 트렌드를 갖는데 일조했다.

 

 

인문학적 
브랜더의 

Simplicity

 

UnitasBRAND 얼마 전 저희는 한 회사의 브랜더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자리에서 브랜드 컨셉을 잡기 위해 시를 써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를 써 보게 한 이유는 혼재하고 있는 브랜드 컨셉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새로운 각도로 브랜드를 보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익숙하게 보던 자신의 브랜드를 보다 비범하게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사님은 인문학이 지향하는 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컨셉을 잡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시를 써 보았지만, 브랜드 인문학의 차원에서 박사님께 시를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김수영 시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의 몇 소절만 보도록 하지요.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 세상에 딱 한 명밖에 없는 김수영이 보이지 않나요? 

 

김수영 시인(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김수영 시인이 만나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이 시인이 본연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는 어디에서 본 듯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흉내 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김춘수 시인의 ‘꽃’을 좋아한 어떤 시인이 스스로 느낀 바를 그대로 글로 써 봤더니 김춘수의 ‘꽃’이랑 비슷하게 나왔다고 합시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 시는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해를 통해 꽃을 바라보며 써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자신의 맨 얼굴이 담긴 꽃이라는 시가 탄생되는 겁니다.

이럴 때는 김춘수 시인의 ‘꽃’하고는 전혀 다른 시가 되는 거지요. 단번에 자기 이해를 통해 시를 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뚜렷하게 드러나다 보니 ‘강신주 스타일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제가 쓴 글은 시가 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가 시작되는 거지요. 

 

저의 경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열 여섯 권 정도의 책을 썼는데, 처음에는 학자 냄새가 난다며 누가 썼는지 잘 모르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뚜렷하게 드러나다 보니 ‘강신주 스타일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제가 쓴 글은 시가 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가 시작되는 거지요.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나’로 완벽하게 구별 짓기가 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이 만나 보고 싶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 인터뷰가 성사된 것일 수도 있겠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이 만나 보고 싶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미친 사람들에게 축배를 듭시다! 
여기 미쳤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말썽꾸러기들 
사각 구멍에 둥근 못같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부적임자들 무언가를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상 유지 상태에 경의를 표하지 않죠. 
당신은 그들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칭송할 수도 헐뜯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바꾸기 때문이죠. 
그들은 발명하고, 상상하고, 치유하고, 
탐험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줍니다. 
그들은 인류를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비록 누군가가 그들을 미쳤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천재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 미쳐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그 일을 해내는 바로 그 미친 사람들 입니다. 

 

- 1997년 애플 광고에 등장한 애플 직원들이 직접 쓴 시

 

BRAND Think 
*익숙하게 보던 자신의 브랜드를 보다 비범하게 보게 하기 위함

흔히 경험하지 않은 것을 과거 경험한 적이 있다고 착각하는 가시 체험을 데자뷔(deja vu, 기시감)라고 하는데 반대로 무수히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느끼는 것을 부자데(vuja de, 신시감)라고 한다. 부자데는 특히 마케터 혹은 브랜더에게 꼭 필요한 능력인데 항상 보아 익숙했던 것을 때에 따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달리 새롭게 보고 접근하여 혁신적인 브랜딩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비전 빌딩(Vision building)이나 컨셉 구축, 프로젝트 진행 등에 평소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해보는 것도 부자데라는 직관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시인. 교수로도 재직하다가 1981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도 불리운다. ‘꽃’은 김춘수의 연작시 중 하나다. 이 시는 언뜻 읽었을 때 연가(戀歌)로읽히기도 하지만, 사랑보다는 존재의 본질을 밝히는 시로 볼 수 있다. 김춘수는 이 시에서 ‘꽃’ 을 하나의 존재로 설정해 매우 심도 깊은 내용의 시를 완성하는데 그는 존재의 본질을 다룬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라고 말한다. 결국 이 시는 모든 사물들이 언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세계를 시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 중요성이 있다

 

*부르디외 《구별짓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대표작 《구별짓기》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뚜렷해진 현대 사회의 문화와 계급의 관계를 경험적인 연구와 독특한 이론으로 규명한 역작 중 하나다. 그는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사회에서 문화적 취향이 어떻게 계급을 규정하는지 정리해냈다. 이 결과물은 어떤 독특한 취향의 무의식적 구조인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부르디외 이론의 핵심이 된다. ‘아비투스’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로서 이는 무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UnitasBRAND Brand Identity를 뜻하는 BI를 Boss Identit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경영자가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경영자의 철학이나 세계관이 브랜드에 끼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 속에서 브랜더들이 인문학을 배운다면 인문학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시연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주식의 변동 폭이 커지지 않습니까? 그만큼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는 ‘신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신뢰’의 다른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처럼 안에서는 힘으로, 바깥에서는 철학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와 같이 심플리시티한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분명, 우리나라 기업에도 철학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철학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내세우는 철학은 ‘소비자들한테는 적용되고 우리한테는 적용 안 된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철학이 아니라 무엇으로 움직일까요? 바로 힘입니다. 그것도 천박한 자본의 힘입니다. 힘은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안에서는 힘으로, 바깥에서는 철학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와 같이 심플리시티한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과연, 브랜더들이 인문학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못 만듭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안에서는 인문학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유는 순수성에서부터 출발하죠. 진정으로 무언가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과정 가운데 사유를 하게 되는 건데,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러한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는 조직이에요.

 

 

기본적으로 인문학자들은 사유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유는 순수성에서부터 출발하죠. 진정으로 무언가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과정 가운데 사유를 하게 되는 건데,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러한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는 조직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결과가 안 나와도 괜찮으니까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박물관도 가서 마음껏 즐기다가 좋은 생각나는 거 있으면 가져다 줄래?”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종종 기업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때도 인문학적인 사고를 어떻게 길러야 하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죠. “가슴에 사표를 쓰고 다니세요. 그리고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리고는 제가 물어보죠. “그럴 수 있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자본으로 움직이는 기업과 철학으로 움직이는 인문학은 다르니까요. 

 

 

“철학 책은 쓰레기네!” 하고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UnitasBRAND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업에서 현재 시도하고 있는 인문학과의 접촉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사고를 길러서 결국에는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생각들을 브랜드의 철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영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찾는 방법을 알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기업이 인문학으로 손을 뻗는 것은 ‘화장’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트를 할 때 여성들이 변화를 주기 위해 화장법을 바꾸는 것과 같이 기업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 제품에 인문학을 덧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디자인에서 이러한 화장법이 가장 많이 보이지요. 소비자들에게 예술 작품을 만나는 것처럼 제품을 인식시키기 위해 디자인에 칸딘스키니, 모딜리아니니 하는 예술성을 덧칠하죠. 그러나 이것은 인문학이 아닙니다. 왜냐면, 재차 강조해서 말했듯이 인문학은 ‘자기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알고 싶다면, 철학 책부터 덮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질문하십시오. 

 


저는 브랜더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군요. 인문학을 알고 싶다고, 철학 서적이나 읽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흉내 내기, 그뿐입니다. 오히려 “철학 책은 쓰레기네!” 하고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밑줄 긋기를 하며 답습하고는, 그것을 자기 지식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인문학적 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기업에서는 이렇게 하면서 인문학을 배우고 있다고 하지요. 죄송하지만 이것은 인문학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것을 브랜드에 담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인문학적인 것이며, 심플리시티입니다. 

 

인문학을 알고 싶다면, 철학 책부터 덮고, 자신이 누군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질문하십시오. 스토리텔러와 소설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압니까? 스토리텔러는 지금 독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이며, 소설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 가며 즐겁게 글을 썼는데 그것이 언젠가 고전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인문학은 고전이 되는 것입니다. 철학 책을 읽는 대신 차라리 사하라 사막을 뛰어 보는 극한의 체험을 더 권하고 싶군요. 그것이 더 인문학적이니까요. 자기 자신이 누군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것을 브랜드에 담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인문학적인 것이며, 심플리시티입니다. 


강신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자 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출판기획집단 문사철(文史哲)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단 철학을 벗어나 현장에서 독자들을 직접 만나며 인문학 열풍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일상적인 삶과 철학적 주제를 연결시켜 일반 대중들도 어렵지 않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철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등이 있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Vol 22 브랜드인문학 유니타스브랜드 SEASON 2 Choice 
- П. Philosophy) Simplicity는 Integrit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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